TV로 유명한 LG가 보일러 시장에 정조준한 이유 — Therma V R290과 알래스카 연구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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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유명한 회사가 보일러 시장에 정조준한 이유
전기 한 단위로 열 네 단위. 같은 난방을 하면서 가스보일러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끝나는 기계가 있어요. 이름은 히트펌프. 유럽에서 이미 가스보일러를 빠르게 끌어내리고 있는데,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LG전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TV와 냉장고로 알려진 회사가 왜 보일러 시장을 그렇게 진지하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알래스카 영하 30도 연구소까지 차린 이유가 뭔지. 그림이 생각보다 큽니다.
유럽이 가스보일러를 버리는 동안 벌어진 일
먼저 큰 그림부터 정리해 볼게요. 유럽연합은 2030년대 중반부터 가스보일러 신규 설치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러시아발 가스 공급 불안과 탄소배출 규제, 두 가지 이유가 한꺼번에 작동했어요. 빈자리를 채우는 게 바로 공기열원 히트펌프(AWHP)입니다.
히트펌프는 외기에서 열을 끌어 와 실내로 옮기는 방식이에요. 직접 연료를 태우지 않으니 탄소배출이 거의 없고, 같은 전기로 3~4배의 열을 만들어냅니다(COP 4 수준). MMR Statistics는 유럽 히트펌프 시장이 2032년 약 460억 달러까지 커진다고 봤어요. LG는 이 시장의 주력 플레이어로 이미 자리잡았고, 삼성도 본격 진입하면서 한국 두 가전사가 유럽 난방 시장을 정면에서 노리는 그림이 만들어졌습니다.
영하 15도에서도 75도 물을 뽑아내는 핵심 무기
LG의 플래그십 제품 이름은 '써마브이(Therma V) R290 모노블럭'입니다. 이름 안에 두 가지 핵심이 들어 있어요. R290은 프로판 기반 천연 냉매로, 지구온난화지수(GWP)가 3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일반 냉매가 수천 단위인 걸 생각하면 거의 0에 가깝죠. 모노블럭은 실외기 한 대로 끝나는 통합형이라 설치가 단순합니다.
성능 숫자도 인상적이에요. 외기 영하 15도에서도 최대 75도 온수를 공급하고, EU의 친환경 에너지 등급 ErP 최상위(A+++)를 받았습니다. 2026년 들어 LG는 이 제품군에 인도어 유닛 3종(Combi·Hydro·Control)을 추가했고, 6.8인치 컬러 디스플레이를 단 통합 디자인으로 2026 iF 디자인 어워드까지 가져갔어요. 단순 가전이 아니라 가구 같은 느낌으로 거실 옆에 놓을 수 있는 제품이 된 셈입니다.
알래스카·오슬로·하얼빈, 추위 속에 차린 세 채의 연구소
히트펌프의 가장 큰 약점은 한랭지 성능입니다. 영하 20도가 일상인 곳에서도 제대로 돌아가야 가스보일러를 진짜로 대체할 수 있어요. 그래서 LG는 일반적인 회사가 잘 하지 않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파가 가장 매서운 도시 세 곳에 차례로 연구소를 차렸어요.
2023년 11월 미국 알래스카에 'LG 알래스카 히트펌프연구소'를 신설하고, 이듬해 6월 노르웨이 오슬로, 8월 중국 하얼빈까지 이어 붙여 글로벌 한랭지 컨소시엄을 만들었습니다. 눈, 비, 극저온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환경에서 같은 제품을 장시간 반복 테스트하는 게 핵심이에요. 북미에는 HVAC 아카데미 6곳을 추가로 운영하면서 시공·관리 인력까지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단순히 박스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그 위의 생태계까지 짜는 그림이죠.
노르웨이 OSO 인수와 35조 K-난방 정면승부
2024년 7월, LG는 노르웨이 프리미엄 온수 솔루션 회사 OSO를 인수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비공개지만, 의도는 분명해요. 히트펌프가 잘 작동하려면 따뜻한 물을 저장·공급하는 온수 탱크 설계가 함께 가야 하는데, OSO는 유럽에서 그 분야의 손꼽히는 기업입니다. 이 인수로 LG는 '냉방·난방·온수'를 한 패키지로 묶는 통합 솔루션을 유럽 시장에 그대로 내놓을 수 있게 됐어요.
한국 시장도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국내 가정용 난방 시장이 약 35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가스보일러가 절대다수예요.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전기료 개편 흐름과 맞물려 LG는 '한국형 히트펌프'를 따로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시기에 삼성도 진입을 선언하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지만 두 가전사가 정면승부하는 구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2030년 매출 2배, 가전 회사가 그리는 다음 카드
LG전자가 공식적으로 밝힌 목표는 2030년까지 가정·상업용 냉난방공조 매출을 두 배 이상 키우는 것입니다. '글로벌 탑티어 종합공조기업'이라는 표현을 회사 자체 공시·보도자료에 명시했어요. 여기에 한 가지 새 카드가 더 붙었습니다. 히트펌프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탄소 배출권 사업입니다.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바꿀 때 줄어드는 탄소를 측정해 국제 배출권 시장에서 수익화하는 모델로,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선 그림이에요.
물론 변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히트펌프가 가스보일러를 빠르게 대체하려면 전기료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하고, 영하 20도 이하 한파에서의 안정성·유지보수 비용에 대한 시장 신뢰가 더 쌓여야 해요. 유럽도 가스보일러 금지 일정이 정치 변수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큰 방향은 정해져 있고, LG는 이미 그 방향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한 회사 중 하나입니다.
한 줄 정리
LG의 히트펌프 사업은 단순한 가전 라인업 확장이 아니라, 가스보일러 시대의 종료를 미리 잡은 베팅입니다. 써마브이 R290이라는 핵심 제품, 알래스카·오슬로·하얼빈 3대 한랭지 연구소, OSO 인수, 그리고 2030년 매출 2배라는 숫자가 그 베팅의 모양을 보여줍니다.
출처
- LG전자 글로벌 뉴스룸 — MCE 2026 유럽 맞춤 HVAC 라인업 공개 (1차 자료)
- LG전자 한국 뉴스룸 — 글로벌 히트펌프 컨소시엄 출범 (1차 자료)
- PV Magazine — LG 신규 공기열원 히트펌프 인도어 유닛 공개
- Korea Herald — Samsung·LG, 보일러 금지 임박한 유럽 히트펌프 시장 정조준
- 헤럴드경제 — LG전자 히트펌프 탄소배출권 수익화 사업 확대
- 뉴스핌 — 가스보일러 밀어내는 히트펌프, 삼성·LG 35조 K-난방 정면승부
- 뉴스1 — '전기 1로 열 4' 유럽 히트펌프 열풍, 한국서 보일러 대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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